SHIN HYUNG SUB
2018 신형섭 개인전 Retrojector
오세원
신형섭 개인전의 전시 부제인 『레트로젝터 (RETROJECTOR 2018)』는 레트로스펙트(retrospect)와 프로젝터(projector)의 합성어로, 역사적인 모든 요소가 융합된 복고를 통해 동시대 감성에 맞는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창조하면서도 친숙한 정서를 드러내고자 한 작가의 작업의도를 담고 있다. 신형섭 작가는 구형슬라이드 프로젝터 같은 오래된 미디어를 작가가 직접 조작하여, 로우테크(low Technology) 방식으로 구현된 독특한 영상작업과 함께 조각으로서의 기계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작가는 ‘조각으로서 미디어’, ‘재현으로서의 영상이미지’(작가노트에서)에 대한 차이를 탐험함으로써 동시대미디어의 사용방식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어두운 전시장 안에는 정체불명 기계조각(apparatus)들이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공중에 둥둥 떠 있고 기괴한 이미지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움직이고 있다. 이는 신형섭 작가가 직접 조작·고안한 슬라이드 프로젝터들로서 슬라이드필름대신 제기에 달린 플라스틱 수술, 성상, 전구, 시계, 계량기 같은 오브제를 기계장치 내부에 삽입, 직접적이고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빛을 투사하여 독특한 영상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묵직해 보이는 부피감과, 심지어 투박하고 거친 기계음을 내뿜는 이 장치들은, 미제(美製)구형 슬라이드 프로젝터뿐만 아니라 바비큐 그릴, 사진렌즈 같은 것들이 케이블타이나 전열테이프 등으로 접합·조합된 환등기계장치들이다. 이들은 오래된 구미디어가 오히려 참신하고 특별해 보이는 영상을 생산하는 뉴미디어로, 아날로그적 환등방식을 지닌 기계장치이지만 디지털고화질과 다른 리얼한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일종의 기계 덕후의 발명품이 조각 작품으로의 전환을 꾀하며 비교존재들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이클롭스Cyclops 시리즈와 함께 아르고스Argos와 아르고스 차일드Argos Child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아르고스는 이름처럼 온몸에 눈이 있는 거인으로, 엄청난 에너지와 함께 결코 잠자지 않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아르고스는 신(주로 헤라)의 명령으로 움직이던 하인이었다.], 아르고스 파노프테스Argos Panoptes등을 선보인다. 신화 속 하이브리드 존재가 상징하는 바, 기계장치들은 신의 명령과도 같이 전기스위치가 “on”이 되면(켜지면) 굉음을 일으키며 퍼포먼스를 시작하는데, “off”가 되지 않는 한(꺼지지 않는 한) 여러 개의 눈(렌즈)들을 통해 전력을 다해 실체를 투사하며 실제로 움직이는 영상들을 뿜어낸다.
이 현장감 넘치는 영상들은 회화나 디지털영상이 보여주는 재현이미지와는 차이를 보인다. 현장성과 직접성에 의한 자기-지시적 재현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동시에 최대한 실제처럼 보이려는 하이테크(high-technology) 디지털 영상이미지만큼이나 리얼하다. 따라서 특이하게도 이러한 영상이 뭔가 진정성 있는 이미지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작가는 반짝이는 플라스틱 수술부터 이 모든 기계들의 전기에너지 총량을 여실히 드러내는 계량기판의 숫자까지, 또한 값비싼 금제품부터 투박한 오백 원짜리 동전이나 싸구려 예수성상모형에 이르기까지 신화/상징과 현실의 간극을 활용한다. 또한 벽면에 투사된 비실체/가짜는 기계 속 실체/진짜를 담보한 재현성을 증명하면서 동시에 디지털이미지와는 다르게 리얼한 이미지 사이를 교란하며 유희를 즐기는 듯하다. 부연하면, 비록 가려져 있지만 진짜 오브제를 고스란히 투사하고 있고, 심지어 쿨링팬(cooling fan)에 의해 흔들리는 이 영상들은 구형이지만 참신한 기계매체를 통해 확고한 지시체를 가진 것으로서 현장성과 함께 자기지시적이고 리얼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렇지만 비실체가 가지는 내속적 한계/실패를 극복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환등기의 팬에 의해 흔들림으로 현존을 드러내지만 염연히 일정부분의 왜곡/결핍을 동반하고 있는 투사된 이미지이다. 또한 우연성을 동반하며 집중적으로 두드러지게 선명한 중심지점과 흐려지는 주변을 형성한다.
신형섭은 2000년 초부터 부엌에서 손쉽게 활용하는 철제 찜기를 볼트너트처럼 반복적으로 연결, “차이 나는” 대형 물고기형상으로 설치하거나, 전선피복을 매체로 리좀rhisome처럼 자가 분열 증식한 넝쿨설치를 통해 주목 받았다. 이전작업에서 보이는, 제 3의 존재설정을 통해 이분법 구조를 벗어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드는 유희방식은, 최근 등장한 작가자신의 기계 덕후적인 성향에 의해 눈이 하나 또는 여러 개, 심지어 백 개 달린 괴물기계의 등장으로까지 이어지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전시가 모더니즘이 추구해온 실재를 향한 몸부림의 연장선으로 볼지, 저항의 언어들이 통합되어 무력화되거나, 또는 역동적이며 보다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의 실험으로 볼지는 관객의 결정에 달려있다 할 수 있다.